안녕하세요~~
은플레르입니다
오늘은 화성에 있는
융릉과 건릉을 소개해드릴까 해요
유난히 비가 많았던
지난여름,,, 가족들과
산책 겸 갔다가
그 고즈넉한 매력에 흠뻑~
빠졌던 기억에...
가을 풍경이 궁금해서
다시 찾았습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가을의 융건릉도 좋습니다
같이 걸어보실래요~ ^^
위치
주차는 무료입니다
관람시간
2월~5월, 9월~10월 |
6월~8월 | 11월~1월 | |||
매표시간 | 관람시간 | 매표시간 | 관람시간 |
매표시간 | 관람시간 |
9시~17시 |
9시~18시 | 9시~17시30분 | 9시~18시30분 | 9시~16시30분 | 9시~17시30분 |
관람요금 1000원, 10인이상 단체 800원
매주 월요일 휴일
관람규칙
화성 융릉과 건릉은 사적 제206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곳으로, 일반 유원지나 공원이 아닙니다.
잘 보전되어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자 산림생태를 관찰하는 자연학습의 장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적지입니다.
문화재와 사적지 보호를 위해 관람시에 아래 사항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흡연, 인화물질, 무기류 등 위험물 반입 금지.
- 음식물 반입금지, 음주 및 취사행위 금지.
- 쓰레기는 되가져가기.
- 각종 야영용품(텐트, 돗자리, 그늘막 등) 반입금지.
- 반려동물 출입금지(장애인 보조견은 예외)
- 체육·놀이기구, 음향기기, 악기, 확성기 등 고성방가와 풍기문란으로 다른 관람객 또는 문화재의 보존 · 관리에 지장을 주는 행위금지.
- 복장, 무속행위, 방언(放言), 개별 제사행위, 종교집회 금지.
- 고건물 및 시설물 파손행위 및 생태계 훼손(식물 및 열매채취 등)행위금지.
- 출입제한구역내의 출입금지.
- 기타 사적지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금지.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건릉
오른쪽으로 가면 융릉이에요
여름에 갔을 땐
많은 비로 인해서
건릉으로 가는 길을 막아서 못 봤는데
이리 걸어가 보니 좋네요
오래된 소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걸으면...
저절로 힐링이 됩니다
융릉
1762년(영조 38)에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묘의 이름은 수은묘(垂恩墓)라 하였으며, 1776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장헌세자라는 존호를 올리고 묘를 원으로 격상하여 이름을 영우원(永祐園)이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1815년(순조 15)에 헌경의황후(혜경궁)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816년에 현륭원에 합장으로 원을 조성하였다. 그 후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년에 사도세자가 추존되자 능으로 격상되어 융릉이라 하였다.
건릉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 김씨의 능이다. 건릉은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수라간,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능침은 융릉과 비슷하지만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정조선황제(재세 : 1752년 음력 9월 22일 ~ 1800년 음력 6월 27일, 재위 : 1776년 음력 3월 10일 ~ 1800년 음력 6월 27일)는 추존 장조와 헌경의황후 홍씨의 둘째 아들로 1752년(영조 28)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1759년(영조 35)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762년(영조 38)에 아버지 장조의 죽음을 목격하는 일을 겪었다. 1762년에 영조는 정조에게 왕위 계승의 명분을 주기 위해 일찍 세상을 뜬 첫째 아들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게 하였다. 1775년(영조 51) 부터는 영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으며, 이듬해인 1776년에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먼저 아버지 장조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노력하였으며,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를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규장각 설치, 신해통공(금난전권 폐지 등) 실시, 신분의 제약 없이 능력과 학식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임진자 등을 새로 만들어 인쇄술의 발달을 기하고, 『증보동국문헌비고』등 많은 서적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이론이 중시되는 학문에 치우치지 않고, 실학을 발전시켰으며, 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기를 가져왔다. 가난한 백성의 구제를 위해 자휼전칙을 공포하고, 제도 개편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후 1800년(정조 24)에 창경궁 영춘헌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순조는 묘호를 정종(正宗)이라 올렸으며,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직계 5대 조상 추존으로 정조선황제로 추존되었다.
정조는 아버지 장조의 원(영우원)을 지금의 자리인 현륭원(융릉)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0년(정조 14)에서 1795년(정조 19)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과천행궁, 안양행궁, 사근참행궁, 시흥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을 설치하였다. 그 중에서도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대표적인 행궁이라 할 수 있다. 1796년(정조 20)에 화성을 축성한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576칸 규모로 건립하였으며, 그 전까지는 1789년(정조 13) 수원읍치를 화산에서 팔달산으로 옮기면서 관아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행궁으로 고쳐 지은 후에도 평상시에는 화성부 유수(留守)가 집무하는 내아(內衙)로 활용하였다. 정조는 1789년(정조 13) 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 이후 이듬해 2월부터 1800년(정조 24) 1월까지 11년간 12차에 걸친 능행을 거행하였다. 이때마다 정조는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화성행궁은 성곽과 더불어 단순한 건축 조형물이 아니라 개혁적인 계몽군주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 정치적, 군사적인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로
융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묘
건릉은 정조와 왕비의 효의선황후의 묘인거죠~
울긋불긋~~ 화려한 맛은 없지만
이런 고즈넉함이 좋습니다
사람들도 없어,,,
한적하게 사색을 즐길 수 있죠
속 시끄러울 때 가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습니다
요즘 같을 땐
사람들 모이는 곳은
피하게 되는데
언택트 여행지로 딱인 듯싶어요
근처엔
맛집, 식당도 많고
보통리저수지카페로 검색하시면
요즘 뜨는 카페도 많으니
융건릉을 둘러보고
식사하시고 카페가는것도
좋을 듯해요
이런 분위기 어떠신가요???
저는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있었답니다~ ^^
천천히 걷고 싶은 곳~~
사색하기 좋은 곳~~
한적하게 데이트하기 좋은 곳~~
가족 나들이하기 좋은 곳~~
화성 융건릉 추천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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